2006년 차량전복사고로 목 이하가 완전마비되었지만 사고 이전에 받은 교육과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정보과학기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육자로서 과연 어떻게 하면 젊은 장애인들이 보다 나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장애인이 겪는 고통을 일반적으로 셋으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경제적인 어려움이고 두 번째가 사회참여의 어려움이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장애인이 되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세 번째는 가족간의 갈등이다. 장애인이 생기면 누가 돕느냐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주로 어머니와 아내가 나서게 되는데 그래서 장애인 문제는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이 세 가지 문제를 푸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어쩌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소위 좋은 고소득 직장에 들어간다면 경제적인 문제와 사회참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요즘은 날로 기기가 발달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이 스스로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면 어머니와 아내도 숨통을 트고 자기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쓰는 기기를 소위 ‘보조공학기기’라고 한다. 대부분 비싸고 또 그냥 직업 없이 집에만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있으면 좋은 것이겠지만 버젓한 직장을 갖고 남들과 경쟁해야 되는 나 같은 장애인에게는 정말 필수불가결한 도구이다. 교육은 직업으로 이어지고 직업은 더 좋은 기기와 사회제도를 요구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은 보다 자립적이 되고 우리 사회는 복지비용의 절감이라는 큰 경제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장애인들이 일을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은 우리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와 자아를 파악해가는 길이다.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장애인들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도움을 받지만 늘 나도 남을 돕고자 한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중도장애인이다. 서울대를 나오고 미국 MIT에 가서 유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부 출연연구소를 거쳐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1년 반 뒤에 중증장애인이 된 것이다. 내 나이 만 44세 때이다. 나처럼 많은 교육을 받고 장애인이 된 경우 말고 정말 어려서부터 아니면 선천적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게도 과연 교육이 해답일까 생각해 보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육은 단순히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수단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아를 찾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중요하다.
장애인이 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받고 소외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교육으로부터의 소외이다. 어머니들은 그냥 매일 수발을 드는 것도 힘든데 무슨 교육이냐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정보과학 통신기기들의 발달은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컴퓨터에만 접속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일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장애학생들에게 “만약 너희가 미래에 차별을 받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장애 그 자체가 아니고 장애인이어서 공부를 소홀히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또 가끔 만나는 어머님들에게는 “이왕 고생하시는 거 과외도 시키세요”라고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지난 20년만 보더라도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크게 나아졌다. 나는 그 원인 중에 하나가 경제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 배가 불러야 비로소 남들도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가 모방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차별을 인권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60년대 엄청난 진통을 겪으면서 소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일종의 템플릿(template)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나니 같은 템플릿에 인종(race)이라는 단어 대신 여성(gender)를 넣어 남녀평등을 이루었고 나아가 장애(disability) 그리고 최근에는 성(sexual preference)에 대한 차별도 금지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편 미국은 늘 전쟁을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다친 사람들을 잘 배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러한 군대의 제도가 사회에 파급된 경향도 없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를 모델로 삼아 경제성장과 사회정의를 만들어가려고 하는 지구상 수 많은 국가들에 있어서 나는 가끔 미국이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마 아닐 것이다. 만약 이들 나라가 따라야 할 모델이 있다면 그것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식개선과 제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장애인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선도주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교육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은 단순히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장애인 문제에 관해서 뒤쳐져 있고 할 일이 많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장애인 문제에 관해서는 어쩌면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지하철도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이 가장 편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가장 뒤늦게 장애인 문제에 눈을 뜬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된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